‘평생 일해도 회장님 1년 연봉은 될까?’ 부정하고 싶었던 회장님의 연봉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진짜 이렇게 받는 거였어?’ 라는 질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들의 평균 연봉은 일반 직원 연봉의 몇 십배, 혹은 몇 백배가 되기도 한다. 적나라하게 사회에 드러난 임원들의 연봉, 수긍하기 힘들다. 현실은 쥐꼬리만 한 월급에 허덕이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연봉공개는 애초에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업 경영자들의 연봉이 합당한지 주주들에게 보여주고 동시에 기업 투자에 대한 투명성 확보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경영자들의 연봉 지급에 대한 타당성이 없었다. 그들의 보수는 ‘성과에 비례한 지급’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SK(주)의 연봉 산정 기준이 구설에 오른 것도 같은 이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SK(주)로부터 87억 원의 경영 보수를 받았다. 이 중 성과급이 63억 원이다. 여기서 성과급은, 경영을 잘해서 목표 사업이나 수익을 초과했을 때 주는 성과보수다. 그러나 최 회장은 지난해 초부터 법적 문제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불가능했다. 그에 대해 SK(주)의 사업보고서 내용 중 ‘산정 기준’에 ‘12년 말 기준의 경영 성과급’이라고 주를 달았다. 즉, 2012년의 경영 활동에 대해 지급하는 성과급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2012년 SK(주)의 경영 실적 역시 영업이익이 2011년에 비해 약 2조 원 감소했고, 기본주당이익(주당 순이익과 비슷한 개념)도 4만 1308원에서 2만 5881원으로 크게 하락했다. 최 회장은 실적 하락에도 불구하고 SK(주), SK이노베이션, SK C&C, SK하이닉스 등 4개사로부터 301억 599만 원을 수령했다.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인 ‘행복경영’으로 행복했던 사람은 본인뿐이었다.
연봉 내용도 상세하지 않다. 고액연봉을 받은 등기임원들이 경영 실적에 어느 정도 이바지하여 보수를 받았는지 모호하다. 삼성전자 이외에는 영업이익과 주당 순이익이 그 전해보다 줄었는데도 고액연봉이 경영 보수로 지급됐다. 등기이사 연봉 산정 기준에 성과급을 기재한 기업도 삼성전자와 SK(주)밖에 없었다. 나머지 기업들은 급여와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으로 연봉내용을 설명하는데, 이는 등기이사로 등록돼 있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보수다.
소위 ‘선진국’인 미국도 임원들의 고액연봉에 대한 논란은 피해 갈 수 없었다. 미국은 주가가 급등하던 1990~2000년대에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된 경영인이 속출했다. 이와 함께 경영자 보수가 전반적으로 급상승하였다. 미국의 ‘최고경영자 대 노동자 평균 연봉’은 1960년 40대1에서 1990년 100대1을 거쳐 2000년대에는 한때 500대1까지 벌어진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함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최고경영자들의 연봉이 급속히 증가해 왔다. 현재 미국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 보수의 평균은 1,390만 달러(한화 142억)로 2012년에 비해 9% 증가했고 상위 100명이 가져간 보수 총액은 무려 15억 달러(한화 1조 5,000억)나 됐다. 이와 같은 최고 경영자들의 연봉은 일반 직원 연봉에 257배나 된다.
미국만큼이나 한국 임원들과 노동자들의 연봉 격차가 너무 큰 것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경영자들의 연봉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 연봉 산정에도 확실한 기준이 없다. 형식적으로는 ‘성과에 비례한 지급’이라 말한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미국의 고액 연봉 체계를 흉내 내면서도 경영 성과에 대한 기준이 없고, 성과에 따른 보수가 지급되지 않았다. 그저 직위(현직 고위 경영자)에 따라 엄청난 돈이 집중되기에 사회적 비난을 사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연봉공개는 민감하다. 무차별적인 연봉공개의 부작용을 우려해 독일은 공개 대상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등기임원에 한정한다. 미국은 고액연봉 상위 3인, 일본은 연봉 1억 엔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사실 임원들의 적정연봉에 대해서는 선진국도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진국은 투명한 기업 공개와 임원의 연봉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고 있다. 가령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기업에 임원 보상안을 구성하는 요소와 함께 각 요소에 해당하는 보상 규모는 어떤 식으로 결정했는지 등을 기재하고 있다.
한국의 등기임원 연봉공개에서는 기준이 되는 사항은 명시돼있지 않았다. 등기임원의 연봉공개 이후 여론의 찬반은 거세지기만 할 뿐 해결책이 없다. 하지만 스위스정부에서는 적자 경영 속에서 고액연봉을 받아간 CEO들에게 법적 제제를 가하려 했다. 기업 간의 연봉차이에 제한을 두고 연봉에 대한 보너스, 퇴직금 제한, 그리고 보너스가 300만 스위스 프랑(한화 34억) 이상이면 세금을 강화하는 내용에 법안을 마련했었다. 보수정계의 반대로 아직 시행은 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효력 발휘를 위해 진행 중이다.
현재 여론은 등기임원 보수와 근로자 임금을 단순 비교하면서 임원들의 보수가 과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총수 일가의 비등기임원 보수도 공개하길 원한다. 그러나 실제 임원 보수는 영업 비밀에 해당하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와 관련이 있다. 헌법이 규정한 과잉금지의 원칙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 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인 연봉공개는 위법이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게다가 투자자나 채권자 보호와 관련 없는 정보 공개의 경우 자본시장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연봉공개가 가지는 투자자 보호 등에 이바지하는 순기능이 무엇인지 검증돼야 한다. 등기임원의 고액 연봉은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다. 적자를 본 기업에 한해 등기 임원 보수를 개별적으로 공개해야겠지만 전체 등기임원 보수 공개는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 등기임원들의 연봉은 경영 능력이라는 ‘희소한 재능’으로 해당 기업의 성장에 기여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본인들이 만들어낸 이윤 일부를 가져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경영 이윤에 대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보수를 받는다. 말은 임원들의 능력으로 대가를 받는 것이지만, 평균적으로 일반 직원의 수십 배를 받아왔다. 어느 기업이 100억 원의 수익을 올렸을 때 이 중 어느 정도가 ‘경영자의 재능’ 덕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뚜렷한 기준은 없다. 그러므로 경영자에 대한 초고액 연봉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다 해당 사회와 기업이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로 했다는 일종의 암묵적 관행이다.
SK(주) 최 회장처럼 경영실적과는 무관한 보수를 받는 경영자들이 있다. 일반 직원은 상상할 수 없는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경영자들, 그에 비례한 경영실적은 없다. 보수는 ‘일한 대가로 주는 돈’이다. 하지만 그 정의를 실현한 경영자는 소수다. 기업들의 제각각인 연봉내용도 문제다. 부당하게 고액연봉을 받는 경영자들은 질타받아 마땅하다. 실제 경영 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는 임원도 있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정확한 기준 없이 중구난방으로 연봉을 공개한 ‘치고 빠지기’식의 정부행동은 국민에게 혼란만 가져왔다. 경영자들의 성과를 수치화할 방법이 없다. 정부는 연봉 공개 이후 소득불평등에 대한 여론의 비판적인 모습을 등한시하고 있다. 스위스 정부와 같이 국가 차원에서 연봉격차 해결을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연봉내용에 대한 정확한 기준의 상세조항이 기재돼야 된다. 소득불평등에 대한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기업에 몰린 부의 편중현상을 법으로 완화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이 요구된다.
박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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