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그때부터 일베의 기질이 나왔었다. 알 수 없는 정치개그, 알고보니 참여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주로 "mc무현", "대중이" 이런 식이었다. 이해를 못했던 당시엔 어이가 없어 웃으며 넘겼다. 그리고 여성혐오증. 여자를 무서워한다고 했고 정말 눈도 못 마주쳤다. 심지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꿈에도 못 꿨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친구는 지금 일본여자와 교제를 하고있다. 여자는 일본에 거주중이다. 종종 일본으로 그녀를 찾아가는 친구를 보면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김치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여성혐오가 아닌 한국녀혐오증이라고 봐야하겠다.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로 진학했다. 그전까진 디시인사이드의 합필갤과 코갤을 전전하던 친구녀석은 마침내 일베에 몸을 담궜음을 언젠가 알게되었다. 재밌는 자료가 많다는 말에 들어가본 일베. 일베의 정체를 알아내기는 커녕 그날 나는 내 친구의 정체를 알아내버렸다. 너무 당혹스러웠다. 그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베의 말투가 온라인게임 내에 너무 많이 돌아다녀 나도 자연스레 쓰고 있었다는 생각이 하나. 일베는 무언가(당시에는 일베의 논리가 왜 잘못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에) 잘못되었고, 내 친구 또한 그렇다는 생각.
어떻게, 무어라 해야할까. 집에 돌아와 잠에 들 때까지, 나는 그 친구를 귀화시킬 영웅적 회유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다음날, 나는 친구에게 평소와 같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과연 내 친구는 나쁜 녀석인가하는 생각, 나를 끊임없이 입닫게 하는 그 생각이 괴로웠다. 나는 친구와 정치적, 사회적 논쟁거리를 가지고 수준이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이전과 같을 순 없을거야. 이런 생각들은 나로하여금 친구와의 거리를 유지케해주었다. 덕분에 좋은 사이로 이어져갔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6년의 세월동안 그 친구는 일베의 길을 걸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하며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다. 가끔 만나면 녀석은 여전히 일베드립을 날린다. 특히 '노짱'이란 단어를 자주 써 나를 불편케해준다. 요새는 "자제해라, 싸울까"하고 눈치를 준다. 녀석도 다소 민감한 반응에 놀랐는지 더 쓰지는 않더라. 친구도 이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를 아는지 아는듯 하다. 녀석은 착하다. 친구로서 그는 나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는 바다. 그때문에 우리는 만남을 더욱이 자제한다. 확률을 줄인다는 것. 가끔씩 오래보는 것. 오래오래 '친구'로 남고 싶은 것..
이제는 군대로 흩어져야할 나이가 되었다. 다소 폭력적인 내면을 가진 그 친구는 군대에서 어떨지 모르겠다. 일베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 친구의 폭력성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통해 해소의 창구가 되어주기도 하였지만(이는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의 모방효과도 낳았다는 게 나의 소견이다. 주변인들에게 일베 특유의 폭력적 언사를 내뱉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현실과의 구분이 모호해짐을 느껴왔다. 군대는 그에게 8증폭제로 다가올 것이다. 바늘을 타고 혈관으로, 뇌로, 손과 발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군대에서, 혹은 그 다음에서 폭발할 것이다.
훈계하면 틀어지고, 참으면 관계가 지속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 관계가 진정한 우정으로 이끌어온 것인지에 의아함이 드는게 사실이다. 나는 혹여라도, 그 친구가 틀리지 않았다한들,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게 밝혀지는 것, 그게 두려웠던 거 같다.
이제는 친구가 일베를 해도 괜찮다. 무슨 소린가 하니, 친구가 자칭 보수라면, 왜 보수인지 명확히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친구를 인정하고, 그렇게 다른 시각을 가진 친구, 그 정도로 마무리를 짓고 싶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봐주는 친구, 얼마나 좋은가.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한 소통으로 서로의 성장통을 막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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