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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철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노홍철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노홍철이 무한도전에서 하차했다. 새벽에 주차 문제로 아주 약간의 거리를 음주 상태로 운전한 탓이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이던 시절부터 그가 있었단 점을 상기시켜보면 길의 하차 때 보다 팬들의 충격이 큰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많은 팬들은 노홍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프로그램을 하차할 만한 것인지, 혹은 이것을 음주운전이라고 하는 게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단호하게 답이 나오는 문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실수다. 아직 채혈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그가 법을 위반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은 명백한 실수이고, 그 실수는 그가 가진 위치나 신분에 비추어 봤을 때 분명 과중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의견에 대해, 정치인이나 공직자에 비해 연예인에게 너무 과한 책임을 물리는 것이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는 정치인들의 비윤리를 단호하게 처단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 중 하나다. 그들을 단호하게 처단하자는 문제가 제기되어야지, 연예인에게 특히 가혹하다는 논리가 되면 우리의 공리는 심히 저해될 것이다.


개인적인 기억에 의하면 <비정상회담>과 과거의 <미녀들의 수다>에서는 외국인 출연자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시행되는 음주운전에 대한 규제와 처벌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호주와 캐나다다. 여기서 인용하고 싶은 것은 캐나다의 사례다. 캐나다의 경우 차 내에 개봉 흔적이 있는 술병이 있으면, 음주 측정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된다. 


해외의 법은 해외의 법이고, 한국의 법은 한국의 법이다. 그래도 "음주운전은 위험하다"란 명제는 전 세계인이 입을 모아 그렇다고 인정할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캐나다의 그러한 법규가 터무니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사실상 음주를 하지 않아도 처벌 받을 수 있으니) 그 의도가 말 그대로, 선진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한 인식의 범주에서 봤을 때, 노홍철의 음주운전은 모든 음주운전자가 저지른 행위와 같이 보는 게 정당하다. 죄의 경중은 혈중 알코올 농도라는 지극히 정확하고 기계적인 기준으로 판별해줄 테니, 구태여 그를 변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술을 마시다 잠깐 차를 빼달라는 요청에 대리를 부르는 사람은 적다. 그러한 이유로 노홍철의 경우는 그냥 운이 안 좋았다고 말하는 것도 세속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세속적인 태도가 우리의 안전불감증의 원인임을 침몰하는 세월호를 지켜보며 우리는 알게 됐다. 세월호 사건에 관련된 죄인들 중에는 규칙을 완전히 위배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죄인들 중 대다수는  규칙의 틈을 이용하거나, 규칙을 마음대로 재해석한 자들이었다. '이 정도 쯤이야'는 우리가 규칙을 제멋대로 재해석할 때 쓰는 가장 흔한 표현이다.


실수의 정도가 경미한 노홍철의 사례와 세월호 사건을 비교한 것은 절대, 그의 죄를 커보이게 하려는 심산이 아니다. 다만 집단의 비이성에 제동을 걸고 싶다. 언뜻 봤을 때, 노홍철의 기사에 베스트로 걸려있는(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들은 요컨대 '노홍철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 모두 현실에서 저 정도의 경미한 위법행위는 하지 않나' 따위의 것이다. 이러한 논증은 따져볼 필요도 없이 논리적인 오류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이 논리적이냐 아니냐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것은 법의 문제이고, 논리가 결여된 반박은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다.  


세월호 이후 한국 국민의 가장 큰 깨달음은 '안전'에 관한 것일 테다. 관료들이 보인 안전에 관한 집단적인 비이성의 행태가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아끼는 노홍철, 그의 죄를 너무 쉽게 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사사로운 감정을 이입해 죄의 유무를 판단하려 하는 것은 그야말로 집단 비이성이다. 


음주운전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안전문제 중에 가장 위험한 축에 드는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안전'과 밀접한 문제에 인정 따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안전'을 외치던 우리의 지난 6개월 간을 망각한 행위와 다름 없다.  




성동욱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SCO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