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log/사회

20대. 누군 아래에 있고. 50대. 누군 위에 있나.

 

갑과 을. 그 미묘한 사이. 누가 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냐?", "어디서 나이도 어린 게 어른 말하는데 눈을 똑바로 쳐다봐?", "김대리 보고서가 이렇게 해서 되겠어? 언제까지 이렇게 일 할 거야?", "사표를 내면 퇴직할 수 있을 것 같아? 정신 나갔내 이 친구"... 세상에는 갑과 을은 있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우린 언제부터 갑이 되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일까?

 

  학교에선 성적이란 갑에게, 대학생은 취직이라는 갑에게, 직장인은 상사라는 갑에게, 부모는 아이라는 갑에게 대한민국은 지금 을이 갑에게 휘둘리는 시기이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보다 갑이 원하고 바라는 일을 하기 바쁘다. 왜? 잘 보여야 하니깐? 아니다. 어느 누가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을 감추고만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이야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항상 나의 곁에 있고,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들. 부모님, 형제, 내 아이. 을은 갑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움츠리고 있다. 그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포기한다. 한 번의 포기가 어렵지 한번 포기한 을들은 계속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각자의 삶이 있겠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마저 자신에게 실망하고 뒤돌아선다면 을은 살아갈 자신이 없다.

 

  요즘 TV 프로그램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코미디빅리그의 '갑과 을' 내용은 단순하다. 이제까지 갑에게 고통당한 을에게 한풀이할 시간을 만들어 준다. 쌓여있던 감정을 단순하지만, 원초적인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쩌면 단순한 방법. 하지만 실제 을들은 갑에게 행할 수 없기에 '갑과 을'은 사람들에게 더 인기를 받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면 갑과 을이라는 관계가 사라지는 것일까? 현실은 여전히 갑과 을일 텐데...

 

  해결책은 없다. 아니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회 속에서 갑과 을은 존재하여야 한다. 누군가는 갑이 될 것이고, 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갑도 분명히 을이었을 때가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을의 위치를 바라본다면 갑도 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들 아프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 다만 생각하기 차이인 것을...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SCOOP

박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