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루이스
히메네스
롯데 자이언츠 팬은 꼴빠라 불린다. 꼴빠란 프로야구 사상 꼴찌를 가장 많이 한 롯데 팬들을 타 팀팬들이 조롱하는 말이고, 현재는 롯데 팬들이 스스로를 비하할 때 자주 쓰인다.
지금 이 꼴빠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이가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역시 루이스 히메네스다. 이 사나이는 데뷔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사직의 외야에 쳐박아(이 표현이 적확하다) 버리더니 지금은 도루를 제외한 모든 타격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한 명의 꼴빠로서 이 선수의 영입 소식을 들었을 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KBO에서 외국인 선수의 연봉 한도를 폐지하며 MLB를 제대로 겪은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었음에도 메이저 경력이 채 10경기가 안 되는 선수를 뽑은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거구의 체격에 비해 성적이 너무 '무난'했다. 루이스 히메네스는 지난 몇 해 간, 2할대 후반의 타율, 3할대 후반의 출루율, 그리고 20개 중반의 홈런을 기록했던 선수였다. 물론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좋다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적은 타자란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192cm에 127kg의 타자(수비나 작전상에서의 불확실함이 예상되는)가 트리플A에서 기록한 성적치곤, 다소 부족해 보였다. 두산의 칸투가 메이저리그에서 30개 가까운 홈런을 쳤고, SK의 스캇이 20홈런을 다수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꼴빠들 입장에서 이 정도 선수에게 만족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자이언츠의 프런트가 비용이 적게 들고, 실패할 확률이 적은 선수를 골랐다는 인상이었다.
역시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히메네스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앞서 자신과 비교됐던 거의 모든 외국인 타자들을 제압하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칸투나 벨이 몇몇 지표에서 앞서 나가고 있지만, 부상으로 인해 히메네스의 출발이 조금 늦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장 내실 있는 활약의 주인공은 역시 히메네스라 할 수 있다.
외국인 타자들이 모두 고른 활약을 보여주는 가운데, 성적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의 진짜 강점은 어쩌면, 캐릭터에 있다. 훌륭한 타격기록이 곧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초반 극강의 활약을 보이던 스캇과 조쉬 벨이 득점권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그 예다. 히메네스는 데뷔전의 끝내기 홈런을 시작으로 불과 며칠 전 삼성의 임창용에게 올 시즌 첫 피홈런을 안겨줬고, 그 이전에는 리그 최고의 마무리라 할 수 있는 SK의 박희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 자신의 스타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매력적인 이 선수를 보며 펠릭스 호세를 떠올리는 것 같다. 좋은 선구안을 바탕으로 기복없는 활약을 펼친다는 점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호세와 히메네스는 꽤나 흡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꼴빠들은 이렇게 호세와 유사한 활약을 보이면서, 착한 성정을 가진 히메네스를 가리켜 "호세 순한 맛"이라 부르기도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히메네스는 호세보다 더 기억에 남는 외국인 타자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호세의 경우, 다혈질의 성질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요한 순간에 전력을 이탈한 경우가 꽤 많았다. 대표적으로 99년 플레이오프에서 퇴장 당해 한국시리즈에서 뛸 수 없었다. 그리고 4강을 노릴 수 있었던 2001년 삼성의 배영수에게 주먹을 날려 징계를 당해 팀의 4강 싸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가 당시 팀의 핵심선수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일이다. 이후엔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이중계약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반면, 히메네스는 자국인 베네수엘라에서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성품이 단정하다. 과거 호세와 같은 문제로 전력을 이탈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출루율과 장타율이 높은, 전형적으로 기복이 없는 안전한 유형의 선수이니 아주 우수한 성적을 올리지 못할지언정 전력에서 완전히 배제될만한 성적을 가까운 미래에 기록하지도 않을 것이다.
야구팬인 동시에 격투기팬인 나에게 히메네스는 왠지 더 특별하다. 데뷔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고, 1루베이스를 천천히 걸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던 그의 모습은, KO를 확신할 수 있는 펀치를 날리고 쿨하게 자신의 코너로 돌아가던 마크 헌트와 너무나도 닮았다.
꽤 매력적인 인물을 몇 품었던 롯데의 외인타자 역사는 히메네스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수백만 꼴빠 중 한 사람으로서 세상 둘도 없이 매력적인 이 슬러거의 모습을 더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동욱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SC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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