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케이블 티비방송 m net에서 아마추어 랩퍼들을 뽑는 방송 쇼 미더 머니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쇼 미더 머니에는 아마추어 랩퍼들과 프로 랩퍼들이 함께 나와 경쟁을 한다. 그렇다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함께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 랩퍼는 아마추어 랩퍼들을 뽑아 팀 내에서 경쟁을 시킨다. 또한 다른 팀과도 경쟁을 해 탈락을 시킨다.
프로 랩퍼들은 같은 소속사에 소속된 가수들이 함께 팀을 이룬다. YG에 타블로와 마스터우, 일리네어 레코즈에 소속된 DOK2(이하 도끼)와 THE QUIETT(이하 더 큐), 브랜 뉴 뮤직에 스윙스와 산이, 무브먼트에 YDG(양동근)가 프로 랩퍼로 나온다. 프로 랩퍼들 모두 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랩퍼들이다. 이 많은 랩퍼들 중에서 나는 중학교때부터 힙합의 귀를 뚫어준 랩퍼, 더 큐에 대해 소개를 할려고 한다.
2009년 중학교 시절, 나는 우연히 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더 큐의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을 들었다. 그 전까지 힙합이라는 음악장르를 몰랐던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나는 더 콰이엇의 노래는 물론 다양한 언더 힙합 노래를 찾아 들었다.
더 콰이엇, 1985년생에 본명은 신동갑이다. 더 큐는 처음부터 랩퍼는 아니었다. 처음 시작은 비트메이커 즉, 힙합 작곡가였다. 더 큐의 정규엘범은 총 4집까지 나왔다. 1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상자 속의 젊음(feat, 팔로알토)’이다. 이 곡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충고와 같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마치 상자속에 갇혀 꿈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상자속에서 나와 꿈을 찾고 하고싶은 것을 하라는 노래다. 이 노래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린 꿈이 없어.
어디든 대롱대롱 매달려야해. 그저 남들 가는대로.
나일 먹을수록 답답함에 한숨만 쉬어 대고.
늘 함께라고 생각했는데 외로워해도, 곁엔 아무도 없어.
자, 시간은 많지 않아.
이제 잠시라도 세상이 너의 손에 쥐어준 키워드 따윈 지워.
부디 진정한 자신을 만나길 빌어.
(더 콰이엇 ‘상자속의 젊음’ 중에서)
2집에 내가 좋아하는 곡은 ‘take the Q train remix(feat, p-type)이다. 이 곡은 더 큐가 직접 부른게 아니고 작곡을 한 것이다. 2집에 대부분의 노래가 자신이 작곡가로 참여하여 다른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형태다. take the Q train은 p-type의 불우한 유년 시절을 주제로 노래한 것이다. 이 곡은 p-type의 표현력이 너무나도 좋아 극찬을 받았던 곡이고 자신의 유년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 listener들에게 메시지를 잘 전달할수 있었다.
비 오면 듣곤하던 낡은 라디오.
맑은 날이 오길. 정말 지겨운 장마 끝날 그 날이 오기를.
하늘에 가까운 우리집 바깥엔 천둥소리만 가득해.
눈물을 닦아주던 엄마는 없고 아빠도 안계셔.
이불을 덮고 한숨을 낮게 쉬어.
꼭 이런 날은 내 그림자 마저 날 괴롭혀.
몰래 손을 뻗어 라디오 볼륨을 높여
빗소리 보다 노랫소리 커질 때,
빗방울 보다 눈물이 짙어질 때,
꼬만 잠든다. 조그만 창문 밖
빗소리 숨어있는 꼬말 찾는다.
(더 콰이엇 2집 'take the Q train remix' 중에서)
더 콰이엇 3집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앨범이다. 내가 힙합을 듣기 시작하게한 노래 ‘진흙 속에서 피는 꽃(feat, mc meta, kebee)’이 수록되어 있다. 진흙속에 피는 꽃은 포기를 모르고 달려왔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힘든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성공한 자신들을 진흙을 뚫고 핀 아름다운 꽃에 비유했다.
우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성공, 실패 이 갈림길 가운데 차라리 넘어질래
그게 더 좋을지 몰라
형들의 어께로 넘겨본 이 곳은 절대로
내 상상과는 달랐어 가끔은 너무 괴로워
어짜피 걷는 길 오로지 한 길을 가라
시든지 오랜 꽃에도 여전히 향기는 남아
(더 콰이엇 3집 ‘진흙 속에서 피는 꽃' 중에서)
더 콰이엇의 시작은 지금은 해체한 소울컴퍼니라는 힙합 레이블이다. 랩퍼 키비가 선두해 총 16명의 랩퍼들이 모여서 형성된 레이블이다. 더 큐의 노래 ‘소중한 만남’에서 더 큐가 힙합을 시작한 계기와 소울 컴퍼니의 시작을 잘 설명했다. 1997년 더 큐의 어린시절 같이 놀던 친구들이 1,2년 후에 랩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에 그 친구들의 공연을 보러갔는데 무대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그가 바로 키비다. 그 후로 가리온의 메타가 개설한 힙합강좌 ‘힙합방’에서 소울 컴퍼니의 멤버들을 만나 레이블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이후 소울컴퍼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힙합레이블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소울컴퍼니는 멤버 각자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커져서 멤버들 서로가 한 레이블에 소속될수 없다고 느꼈다한다. 결국 2011년 소울컴퍼니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더 큐의 노래에서는 ‘난 영원히 소울컴퍼니다’라는 가사를 볼 수 있다.
소울 컴퍼니가 해체되고 더 큐는 랩퍼 도끼와 같이 일리네어 레코즈라는 레이블을 공동 설립했다. 그 후로 빈지노를 영입했고 현재 대한민국에 최고가는 레이블이 되었다. 2014년 5월에 발매된 일리네어 레코즈의 정규앨범 11:11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이 나오자마자 힙합listener들은 앨범을 사고 곡을 다운 받았다. 또한mc meta가 참여한 곡도 있다. 도끼, 빈지노와 함께 완벽한 콜라보를 보여주었다.
이 앨범에서는 그 전에 못봤던 더 콰이엇의 새로운 랩 스타일을 볼수 있다. 예전에 더 큐의 스타일이 감성적이고 가사에 비중을 많이 두웠다면 11:11앨범의 더 큐의 스타일은 '자기자랑'이다. 노래 가사에서도 볼수있듯이 돈자랑이 심하다. 하지만 더 큐만 그런게 아니고 이번 앨범 컨셉이 성공한 일리네어 레코즈의 돈자랑이 주를 이룬다. 여러 listner들은 더 큐의 변한 스타일을 보고 비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전의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로 바꾼 더 큐가 은퇴하지않고 아직도 랩을 할수 있는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한다.
벌고 쓰는게 학교의 수업이었다면 난 professor
(일리네어 레코즈 '가' 중에서)
‘난 돈 벌려고 랩하는거 아니야 단지 랩하니깐 돈이 따라올뿐이지’ 일리네어 레코즈의 노래중에 더 큐의 가사다. 즐기면서 노래를 하는 그는 진정한 프로이다. 앞으로도 일리네어 레코즈가 좋은 앨범을 내고 활동도 활발하게 했으면 좋겠다.
한지한(gks75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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