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벤 헨더슨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인가.
오늘 김동현의 경기가 있었다. 예전보다 부쩍 종합격투기 경기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 한국 선수의 UFC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느 정도 웹상에서의 반향이 있긴 했지만, 이번 경기에 대한 관심은 이전에 체감하던 수준과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김동현이 타이틀 전선에 다가가고 있다는 점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송가연이나 윤형빈의 경기가 대중들에게 이 스포츠를 조금은 친숙하게 만든 것도 사실일 테다.
많이 얘기되어지고 있는 김동현의 경기를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가 등장하는 UFC 마카오 대회가 끝나고 12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열릴 UFC Fight Night 49 대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격투기 팬들이야 잘 알고 있겠지만, 24일 오전에 열리는 이 대회의 메인 이벤터는 벤 핸더슨이다.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하프 코리안이다.
한 때 김치 파이터라고도 불리고, 슈퍼코리안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벤 헨더슨은 현재 한국에서 거의 잊힌 존재인 것 같다. 김동현의 경기가 끝나고 불과 반나절 후에 열릴 벤 헨더슨의 경기에 대한 기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인의 피가 섞인 파이터가 세계챔피언이 됐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많은 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사실, 그에게 흐르는 한국인의 피를 유별나게 강조한 쪽은 벤 헨더슨 자신이 아닌, 한국의 격투팬 혹은 매체였다. 그가 중소단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시절만 하더라도, 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은 그저 그가 가진 많은 정보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벤 헨더슨의 전장이 UFC로 바뀌고, 그가 급속도로 성장해 타이틀을 따내니 그때서야 그 단순한 정보가 한국에서 상품으로 가공됐다. 격투매체들은 그가 내한했을 때 무엇을 먹는지까지 취재해 기사를 올리곤 했다.
그리고 작년 말 벤 헨더슨은 타이틀을 잃었다. 그 뒤부터 그에 대한 정보가 언론에 노출되는 횟수는 그 전에 비해 급격히 줄었다. 타이틀을 잃었다 뿐이지 그가 아주 형편없는 파이터가 된 것은 아니다. UFC의 어떤 대회에서든, 메인 이벤터로 설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상권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중적으로 가장 알려진 파이터인 정찬성도 메인 이벤터로 선 경험은 고작 두 번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벤 헨더슨은 아직, 정상권에서 경쟁하고 있는 선수란 말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였을 때는 부러 기대하지도 않았던 한민족 대우를 해주더니, 그가 최고의 위치에서 한 발짝 물러난 뒤부터는 한국 피가 섞인 아시안-아프리칸 혼혈 파이터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느낌이다. 애초에 우리가 그에게 민족적인 프레임을 덧씌우지 않고, 그저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하나의 정보로써만 받아들였다면, 이렇게 큰 괴리가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그리 생소한 경험은 아니다. 국가에서 보호해주지 못해 프랑스로 입양 가야했던 아이가 그곳에서 장관으로 성장하자 한민족의 우수성에 대해 떠들어댔던 게 우리의 모습이었다.
벤 헨더슨의 소외를 목격하기 전까진 잠깐 잊고 있었다.
성동욱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성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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