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코 러브스토리>를 보고 입덕을 고려
<타마코 러브스토리>를 봤다. 나는 이전에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편 영화로써의 애니메이션들이었다. <타마코 러브스토리> 또한 극장판 장편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면 어디까지나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을 거다.
<타마코 러브스토리>는 TV판 애니메이션의 연속선상에 있다(내용을 떠나서 속성만을)는 것을 감안한다면, 영화팬들에게도 딱히 즐기질 못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 나타나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온당한가?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최근에 개봉하는 수 많은 개봉작들 중 이 작품이 장편영화로써 월등한 지위를 획득할 만한 구석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과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타마코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분명히 이 장르, 혹은 이 구획에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자체를 달리하게 됐다. 나는 기본적으로, 출발이 극장판으로 기획되지 않은 작품(주로 TV판의 연속선상에 있는 애니메이션)은 걸러내고 작품을 감상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태도를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감동을 받아서 생긴 변화는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세계는 확장될 수 있다"는 명제가 애니메이션에는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연재물을 만나게 된다. 세대별로 다르겠지만, TV 방영 드라마가 그러할 테고, 속편이 존재하는 영화가 그러할 테다. 누군가에게는 신문에 연재된 글들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연재물 중 어떤 것들은 그것이 주는 유희가 끝나버리는 순간이 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우리 마음 깊숙이 들어온다. 그 서사가 끝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멈춘다거나, 우리가 그것으로 받은 영향까지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연재가 끝난다는 것은 연재되는 기간 동안 존재하던 세계가 멈추는 것, 혹은 소멸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쯤되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망가'의 세계라 표현하는 것이 옳다. 굳이 일본어를 쓰겠다는 게 아니라, 엄격히 다른 나라들의 시장과 구별되는 일본 만화의 속성을 고려한다면 이 표기가 정확하다. 표기야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망가의 세계는 내가 기존에 알던 세계들 중, 그 무엇보다도 flexible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블이나 DC코믹스를 필두로 한 헐리웃의 콘텐츠들도 간혹 이런 세계의 확장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나오는 프리퀄, 스핀오프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세계가 확장된다는 면은 같지만, 코믹스였던 작품이 실사의 형태(혹은 실사와 결합한 형태)로 작품화 된다는 점에서 그 연속성은 망가에 미치질 못한다. 사실상 비슷한 세계가 구현된 것에 가깝다.
망가의 세계는 단행본과 애니, 그리고 극장판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끊임없이 순환한다. 게다가 팬들의 열망이 있다면, 비중이 낮게 다뤄지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번외편의 아이디어로 채택되기도 한다. 이것은 단순히 스핀오프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끊임없이 재생될 수 있다는 것의 방증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서사에 성적인 요소가 결여된 작품이라고 해도, 그 속의 캐릭터에 대한 성적인 매력을 느낀 이가 많다면, 그 욕망을 채워주는 패러디 작품들 또한 등장한다. 누군가에겐 이게 어떻게 장점이 될 수 있나 싶겠지만, 패러디에 대한 통제가 적다는 것은 곧 그 세계의 '표현의 자유' 정도가 상당히 우월한 수준에 있다는 뜻이다.
제목을 '입덕을 고려하게 됨'이라 달았지만, 정말로 입덕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이 장르에 빠져들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내 경우에는 기본적인 애니 덕후들이 따르는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들은 아주 많은 단행본과 TV방영 애니를 보고, 또한 그 뒤에 극장판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가뭄에 콩나듯 개봉하는 작품들을 본 뒤, 거슬러 올라가 그 작품의 토대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그 정도의 수준에서 이 세계에 참여할게 될 것 같다.
성동욱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성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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