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대 다니는 친구와 술을 마셨다. 그 자리에서 친구가 나에게 갑자기 하소연했다.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하고 있는데 너무 화가 나더란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고 있는데 그 기업에서 갑자기 인문학적 소양을 최우선적으로 본다고 하니 기가 막힐 지경이라고 한다. 뭐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많은지 어떻게 해야 할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막막한 심정을 나에게 술자리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왜 기업에서는 갑자기 취업준비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예전부터 유명 해외기업들의 성공 요인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미디어에서 보도하자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도 똑같이 벤치마킹하는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창조경제’를 명목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것은 곧 대한민국에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많은 강연과 토크 콘서트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책 <지적대화를 위한 깊고 얕은 지식> 같은 인문학 교양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등록돼있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린 채 한국사회에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먼저 정부정책과 기업전략의 목적으로 인문학이 미디어나 언론에서 홍보수단과 시장의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 서서히 자본에 의해 종속되는 주객전도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인문학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육 현장에서는 인문학이 사라져 버릴 위험상태인데도 정부나 기업은 왜 침묵하고 있을까.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말이다. 너무나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고등학교의 문과 이과 비율은 요즘 평균적으로 한 학년 전체 10반이라고 했을 때, 2:8이라고 한다. 갈수록 학생들은 문과는 미래가 없으며 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인문학을 등한시하고 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인기가 없는 학과, 취업이 안 되는 학과 대부분이 인문계열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 내부에서는 인문대 몇몇 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그 결과 인문학은 학생들에게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여겨지거나 관심이 없는 학문. 재미없는 학문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정부나 기업이 이런 인문학의 변질하는 모습을 망각한 채 인문학이 중요하다고만 말을 하는 건 어처구니없다. 그것은 인문학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자 무시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중요한 학문이다. 문학, 철학, 예술, 심리, 역사 등 학계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모호한 만큼 광대한 범위를 가지고 있다. 세계의 역사 속에서 인문학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권력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고 어렵고 가난한 사회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상이 등장했다. 그 속에서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나오면서 사회발전에 얼마나 큰 업적을 남겼는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도 인문학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문학의 변질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적으로 가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또는 인간을 단순히 도구적인 성격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사회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 갑질 논란, 세월호 사고, 지역갈등, 일베 등이 그 예이지 않을까. 인문학은 단순히 사람들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할 만큼의 호락호락한 학문이 아니다. 또한, 얕은 지식을 쌓기 위해서, 지적 대화를 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가 집약된 학문이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인문학 본질을 잃어버리는 그 첫 번째 단계는 먼저 인문학이라는 것을 가볍게 여길 때부터다. 두 번째, 자본을 위한 마케팅과 취업이라는 수단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간 인문학은 변질하고 훼손될 것이다.
인문학 회복을 위해서는 이런 생각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자세가 요구된다. 어떻게? 세상을 알려고 하는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서다. 강연이나 미디어에서 도움을 구하는 것도 물론 맞지만 먼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정부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주장하기 이전에 인문학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 아닌 진지하고 깊은 교육과정이 우선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scoop
김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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