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프로레슬러,
사쿠라바
카즈시
'사쿠라바 카즈시', 이 이름은 아마 격투기를 즐겨 보는 팬들에게도 생소하거나,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이름일 것 같다. 격투기를 즐겨보지 않는다면,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렇게 설명해보겠다. '사랑이 아빠', 추성훈이 몸에 크림을 과도하게 발라, 경기에 이기고도 노게임 선언이 됐던, 그 경기를 기억하는 사람의 숫자는 사쿠라바 카즈시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보다 조금은 더 많을 것 같다. 바로 그 경기에서 추성훈의 반대 코너에서 서있던 선수가 바로 사쿠라바 카즈시다.
많은 이들에게 생소하겠지만, 종합격투기 팬들에게 만큼은 사쿠라바 카즈시는 잊힐 수 없는 이름이다. UFC의 시대가 오기 전, 프라이드FC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언제나 "프로레슬링은 강합니다"를 외치던 그는, 프라이드 FC가 눈부신 시절을 보내던 시절의 중심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도장깨기처럼 보였던, 그레이시 가문과의 대결은 그가 써내려간 역사 중, 단연 으뜸이 될 챕터다.
사쿠라바 카즈시가 혈혈단신으로 벌인, 그레이시 가문과의 대결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 대립이 왜 그토록 흥미로운지 알기 위해서는 조금의 설명이 필요하다. 아주 초창기의 프라이드FC에서는 당시 사쿠라바 카즈시가 소속된 다카다 도장의 수장인 다카다 노부히코와 그레이시 가문의 맏형이자 실전격투에서 400전 무패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기록한 힉슨 그레이시의 대결이 있었다. 이 경기는 힉슨 그레이시의 승리로 끝났다. 긴 전쟁의 서막이었다.(혹자들은 사쿠라바와 그레이시 가문이 대립하게 된 역사를, 아주 오래 전의 그레이시 가문과 일본 유술가들이 벌였던 대립에서부터 찾기도 한다.)
리더들의 대결부터 시작됐기에 사쿠라바와 그레이시 가문의 대립은 사쿠라바가 언제나 자부심을 갖던 프로레슬링, 그 속에서의 드라마 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또한, 그레이시 가문은 UFC1이 열리던, 90년대 초반부터 프라이그FC가 태동하던 90년대 말까지의 종합격투기의 태동기를 사실상 접수했던 존재였다. 동시에 그들이 이 스포츠를 잠식하던 과정에서는 수많은 일본의 파이터들, 특히 사쿠라바의 동료이던 프로레슬러 출신의 파이터들이 많이 희생됐다. 일본이나 아시아 팬들이 사쿠라바가 이 대립에서 승리하는 것을 간절히 바랐을 것이란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쿠라바는 종합격투기 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이 대립에서 완승을 거둔다. 당시 활동하던, '그레이시들'을 차례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상대였던, 호이스 그레이시와의 혈투는 종합격투기 역사의 정전에 올랐다. 우리가 언제나 영화정보 프로그램에서 <펄프픽션>의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의 댄스 장면을 보게되는 것처럼, 호이스와 사쿠라바의 혈투는 격투기에서 '올타임 리퀘스트' 장면이 된 것이다. 그레이시 가문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그에게는 '그레이시 헌터'라는 근사한 별명이 주어졌다.
나는 사쿠라바가 그레이시 가문을 격파해 나가던 모습을 동시대에 목격한 사람은 아니다. 그로부터 2,3년이 흘러, 이제 막 케이블의 심야방송에 프라이드FC가 편성되던 시절에 그의 활약상을 접했다. 중계가 되지 않던 시절, 아주 어렵게 그의 활약상을 지켜봤을 동시대의 팬들에 비하면 사쿠라바에 대한 나의 감상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는 훌륭한 기량을 가진 파이터였지만, 나는 그의 실력보다 더 훌륭했던 정신을 기억한다. 사쿠라바는 한국의 윤동식과 대결한 적이 있었다. 윤동식은 데뷔전이라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기에 경기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경기 이전의 인터뷰 과정이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다.
당시 윤동식은 데뷔전을 가지는 선수였지만 과거 유도 세계선수권자였기에, 주최사에서는 사쿠라바와 윤동식의 경기를 한일전의 구도로 홍보했다. 당연히 그 분위기를 띄우려 각종 매스컴에서는 두 선수에게 한일전에 임하는 각오를 물었다. 여기에 관해 여러 인터뷰가 있었겠지만, 나는 단 한 가지 답변만이 기억난다.
"나는 세계인이다"고 말한 사쿠라바의 답변이다. 이 답변은 한일전의 코드를 부각시켜 이벤트를 흥행시키려던 주최사와 이 대결에 감정을 이입하려는 양국의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모범적이진 않았다. 자신은 세계시민이니 한일전 따위는 상관 없다던, 그의 이런 태도는 당시에는 기행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그의 행동은 존경해 마지않게 된다.
지금도 한일전에 임하는 선수들은 과잉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불과 몇 해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한 선수는 일본과의 경기에서 인종차별적인 세레모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동시에 일본에서는 아직도 욱일승천기 등으로 우리를 자극한다. 이런 후안무치한 양국의 사람들을 보는 것은 아주 신물이 나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세계의 많은 시민들 중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파이터이자 당당히 세계시민의 자의식을 드러내던, 사쿠라바 카즈시가 그립다.
성동욱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SC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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